인도네시아의 모카라는 그룹의 노래.....우리 지수가 오늘 학교에서 듣고 좋았다면서 찾아달라고 해서....



I've got the best thing in the world
난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을 가지고 있어

Coz' I got you in my heart
왜냐면 네가 내 마음속에 있기 때문이야

And this screw little world
그리고 이것은 작은 세상을 고정시켜

Let's hold hand together
같이 손잡자

We can share forever
우린 영원히 공유할수 있어

Maybe someday the sky will be coloured with our love
아마 언젠간 하늘은 우리의 사랑으로 물들꺼야

I wake up in the morning  Feeling emptyness in my heart
내가 아침에 일어났을땐 나의 마음은 공허했어

This pain is just too real
이 고통은 너무나 생생해

I dream about you, with someone else
난 너에 대한 꿈을 다른이와 꾸고 있어

Please say that you love me
날 사랑한다 말해줘

That we'll never be apart
그리고 우리가 절대로 헤어지지 않는다고도

You have to promise That you will be faithful
충실해지겠다고 나에게 약속해줘

And there will be lots and lots of love
그리고 사랑은 더욱 더 많아 질꺼야

It is the thing that really matters in this world
이것이 바로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야

I've got the best thing in the world
난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을 가지고 있어

Coz' I got you in my heart
왜냐면 네가 내 마음속에 있기 때문이야

And this screw little world
그리고 이것은 작은 세상을 고정시켜

Let's hold hand together
같이 손잡자

We can share forever
우린 영원히 공유할수 있어

Maybe someday the sky will be coloured with our love
아마 언젠간 하늘은 우리의 사랑으로 물들꺼야

You have to promise That you will be faithful
충실해지겠다고 나에게 약속해줘

And there will be lots and lots of love
그리고 사랑은 더욱 더 많아 질꺼야

It is the thing that really matters in this world
이것이 바로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야

Posted by 하늘색스웨터

워낙 행사가 많은 5월. 자율휴업일까지 더하여 지니 5월 1일부터 5일까지 아이들이 학교를 가지 않는다. 그래서 5월 1일은 강화도를 다녀왔다.

아이들 학교와 같이 자율휴업일인 곳도 많아서 길이 막히지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늦게 출발했는데, 동부간선도로에서 내부순환로 타고 자유로를 거쳐 김포시를 지나 강화도 초지대교를 건너 초지진에 도착하기까지 한 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강화대교를 타고 들어가서 강화역사관부터 훑어 보며 내려와 초지대교를 타고 강화도를 떠나는 코스로 돌아 볼 수도 있지만, 우리는 초지대교를 타고 강화도로 들어가서, 초지진, 덕진진, 광성보, 강화역사관, 고려궁지, 강화고인돌을 보고 강화대교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처음에 출발할 때는 야, 이거 다보고 올려면 한밤중이나 되야 하는 거 아냐 라고 생각했는데, 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큰 섬(원래는 5번째였는데, 간척 사업 덕분에 제주, 진도, 거제에 이어 4번째로 큰 섬이 되었다고 한다)이라고 해도 섬은 섬이고, 봐야 할 것들이 해안 쪽에 모여있어서 초지진에 11시쯤 도착했는데, 강화 고인돌까지 보고 5시 30분쯤 출발할 수 있었다. 물론 중간에 간단한 점심도 먹고.

강화 고인돌을 제외하고 우리가 돌아보려는 곳은 국방유적이라고 해서 1977년 박정희 대통령이 복원을 명령해서 복원된 곳들이었고, 역사관, 광성보, 덕진진, 고려궁지, 초지진을 모두 돌아볼수 있는 일괄관광 입장표가 있었다. 요금은 어른은 2,700원, 아이는  1,700원.

초지진

고려의 수도였던 개경쪽에서 흘러오는 예성강과 조선의 수도이자 현재의 수도인 한양(서울)에서 흘러오는 한강이 만나 강화도와 김포시가 마주보고 있는 강화 해엽을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서해쪽에서 접근한 외국 배들이 개경이나 서울에 도착하려면, 강화 해엽을 거쳐야 했고, 그래서 강화도가 국방의 요지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2002년 건설되었다는 초지대교를 건너 가며 "애들아, 우리 지금 바다 위로 놓인 다리를 건너 강화도를 들어 가고 있어"라고 했는데, 도착하여 설명을 들어보니 염하강이란다. 즉, 바다가 아니고, 강이 바다와 만나는 곳이라서 소금기가 있는 강이라는 거다.

은 현재의 대대급, 는 현재의 중대급, 돈대는 현재의 소대급이라고 한다. 보통 하나의 진 아래 몇 개의 보와 돈대가 소속되어 강화도 동쪽 해안을 지켰다고 한다.

우리가 처음 도착한 초지진도 진이기 때문에 원래는 규모도 크고 근처에 5개의 돈대가 소속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복원된 것은 돈대 하나 정도의 규모라서 오히려 광성보보다 크기가 작다.

내가 나이가 그렇게 많이 먹은 건 아니지만 가끔 우리 나라 참 살기 좋아졌구나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이 날이 그랬다. 요청을 하면 각 장소에서 문화해설해주시는 분이 있어서, 무료로 설명을 해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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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지진 밖에서 문화해설사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있는 지수. 해설사 선생님 뒤쪽으로 보이는 파란 바지의 엉덩이가 윤수 --;;; 설명을 듣고 있는 이곳까지가 원래는 바다였으나 지금은 간척사업으로 땅으로 바뀐 상태. 계단 뒷쪽에 있는 소나무에는 1876년(조선 고종) 강화도조약의 구실이 된 운양호 사건 때 일본 배가 쏜 포탄을 맞은 흔적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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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에는 옛날 조선시대 때 사용되던 진품 대포가 2개 있는데, 한 개는 초지진에, 다른 한 개는  강화역사관이 있는 갑곶돈대 있다. 지붕이 있는 곳에 있어야 진품 대포. ^^;; 대포, 소포, 불랑기 이렇게 3종류의 포가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대포는 사정거리 700m이고 소포는 사정거리 300m인데 포탄이 소리만 클 뿐이었다고 한다. 이런 무기로 미국과 싸웠으니 미국 전사자 3명 나는 동안 우리쪽은 350명 가량이 전사했을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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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지진에서 바라 보이는 무인등대. 썰물 때는 무인 등대근처까지 갯벌이 된다고 하는데, 무인등대는 근처를 지나는 배에게 이 무인등대가 있는 근처는 바위가 많은 곳이므로 접근하면 위험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표시라고 한다.]

덕진진

기우는 명나라와 막 일어나는 후금(후의 청나라) 사이에서 나름의 중립외교를 폈던 광해군이 친명을 주장하는 세력에 의해(왕을 나은 후궁들 이란 책을 보면 후궁의 소생인 광해군이 유교적 사상이 뿌리깊은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급하게 자신의 어머니를 정식 왕비로 추존하는 과정에서 반목이 깊어졌다고 한다) 인조반정으로 물러나게 된다.

아무래도 인조는 친명정책을 폈을 것이고, 그러저런 이유로 후금이 조선으로 쳐들어 온 것이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다. 이 두 호란 모두 인조 임금 때 일이다.

정묘호란 때는 인조가 강화도로 건너와 후금에 저항했고, 후금이 형제의 맹약을 맺는 선에서 전쟁이 끝났다. 하지만, 그 뒤의 병자호란 때는 후금이 강화도 쪽으로 인조가 건너오지 못하게 막았고 인조는 남한산성에 고립된 채 싸움을 하다 결국 군신 관계를 맺고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후금에 볼모로 잡혀가게 되었다.

인조 임금이 돌아가신 뒤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조선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소현세자는 두달만에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봉림대군이 왕이 된다. 바로 인조 다음 임금인 효종이다.

청에 불모로 잡혀갔던 효종은 북벌정책을 계획하고 국사시간에 열심히 외운 강화도 5개의 진을 만들고, 효종 다음 임금인 숙종이 돈대 등을 추가하여 5진7보53돈대를 갖추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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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효종 임금은 북벌을 실행하지 못했지다. 덕진진에 있는 흥성대원군의 경고비. 프랑스인 신부의 죽음을 이유 삼아 쳐들어 온 프랑스 군을 양헌수 장군이 물리친 후 세운 것(병인양요). 쇄국정책을 더 강화한 계기가 된 사건인데, 경고비 내용은 한마디로 까불지 마. 근데 어쩌면 이 때 흥선대원군이 대오각성해서 쇄국정책을 포기했다면, 우리 나라 근현대사가 많이 빠뀔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아이들이야 땅 지자같은 아는 한자가 있는게 반가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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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진진에서 남경포대를 지나 덕진돈대 옆에 경고비가 있다. 경고비를 보고 다시 남경포대를 지나며 근처에 핀 민들레 씨앗이 많이 있길래 바람에 흩날리는 민들레 씨앗을 찍어볼까 해서 아이들에게 열심히 불어보라고 시켰는데....일반 디카로는....이제 보니 배경도 밝은 하늘이니 씨앗이 보일리 없지....그래도 열심히 불어준 애들아, 고맙다...ㅎㅎㅎ]

광성보

원래는 진 보다는 작은 규모이지만, 공원을 포함하여 복원되어 있어서 현재로는 다른 진보다 넓고 가족 단위로 쉴 만한 곳도 있었다.

광성보는 미국이 개항을 요구하며 처들어온 신미양요의 격전지이다. 미군이 강화해엽 입구인 초지진에서 덕진진을 거쳐 광성보까지 진출하는덴 2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그런데 광성보에서 우리나라 군대를 전멸하기까지 총 48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광성보에서 우리나라 군대를 전멸한 후 미국은 이쯤이면 정신차렸겠지하고 물러가서 우리나라가 개항을 하겠다고 관리를 보내올 줄 알고 기달렸다고 한다. 하지만, 흥선대원군은 오래 버틸 방법을 찾으면 프랑스처럼 미국이 퇴각할 것이라고 생각했단다.

그래서 전국 중요 도회지에 척화비(외국 오랑캐와 싸우지 않는 사람은 모두 매국노라는 내용)를 세웠는데 이러한 조치에 미국은 대규모 군사행동을 감행하지 않고는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겠다고 생각하게 되고, 당시 파견된 병력은 그만한 병력이 아니었으르모 그냥 철수한다. 그런데 이러한 미국의 철수를 흥선대원군은 미국을 이긴 것이라 생각하고 계속 쇄국정책을 고수하게 되었다고 한다. 

사람이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것이 사실이지만, 개인의 차원에서는 그게 문제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지도자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면 정말 곤란한 문제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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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성보에 속해있는 용두돈대. 해안에 자연적으로 돌출된 부분에 돈대를 쌓은 것으로 용머리를 닮았다고 용두돈대라고 한단다.  이 근처가 손돌목이다. 손돌목에 얽힌 이야기 - 인조 임금이 정묘호란 때 강화도를 건너오면서 강의 흐름이 거센 것을 보고 사공이었던 손돌이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 생각하여 참수형을 시켰단다. 그런데, 강을 건너고 나서야 손돌이 오히려 자신을 안전하게 건네주었다는 것을 알게되고... 그 후 손돌이 사형당한 음력10월20일경이 되면 물살도 더욱 거세지고 추위도 심해진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현상을 손돌의 한숨, 손돌의 추위라고 하고 손돌이 참수 당한 곳이라고 해서 손돌목이라고 부른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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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 있는 적에게 조총을 쏘던 구멍인데, 비교적 가까이 근접한 적을 향해 총을 쏘던 근총안(위)과 멀리있던 적을 향해 총을 쏘던 원총안(아래)]

강화역사관

강화도에 있는 선사시대부터 근대까지의 역사 유적지에 대한 내용을 한 장소에서 볼 수 있는 곳인데, 이곳도 다른 곳처럼 해설해주시는 분이 계셔서 참 좋았다.

우리는 이미 보고 온 곳에서 들은 설명이 있어서 겹치는 부분도 있었지만,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전체 코스를 강화역사관부터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그리고, 나도 그랬지만, 아이들과 함께 온 엄마 아빠 들이 그 설명을 더 적극적으로 듣고 질문도 하고....^^;;;

고려궁지

고려는 몽골의 침입으로 강화도를 임시 수도로 삼고 39년을 강화도에 있으면서 개경과 똑같은 구조와 명칭으로 궁궐을 지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시아를 넘어 유럽까지 정복한 몽골이 우습게 보았던 작은 나라 고려를 39년 동안이나 완전히 정복하지 못하였기에 고려와 화의를 맺으면서 걸은 조건이 강화도에 세운 성과 궁궐을 모두 허무는 거였다고 한다.

3중으로 성을 쌓고 궁궐을 짖는데 들어간 백성들의 노역도 커을 텐데 그것을 부수는 것도 직접해야 했으니 참 기분 더러웠겠다 싶었다.

화의 조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지수는 몽골이 참 나쁘다며 열을 냈지만, 싸움에 진다는 게 그런 거지 싶었다. 고려의 임금이 제대로 정치를 했다면 무신 정권이 들어설리도 없었을 것이고 문신 정권의 잘 못을 이유로 자신들이 정권을 잡은 무신 정권이 제 잇속만 챙기며 살지 않았다면 몽골에 좀 더 잘 대응하지 않았을까 싶다.

아무튼 고려가 개경으로 환도를 하면서 모두 허물었기 때문에 고려궁지 고려 시대 건축물은 없다. 대신 후에 조선이 강화를 중요 방어 기지로 생각하고 세운 유수부 동헌과 이방청이 남아있다.

그리고 정조 임금이 의궤를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하여 한양 궁궐에 있는 규장각과 같은 것을 강화도에 짓고 외규장각이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외규장각 안에 있던 중요한 자료들은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에 약탈해 갔고, 건물은 불태워버렸다고 한다.

문화국가라는 프랑스지만, 자신들의 문화 외에는 약탈의 대상이 될 뿐인 것이다. 더욱이 그렇게 빼앗아간 문화재 중 한 점을 고속철도 협상에서 줄 것처럼 이야기 하고 막상 자신들의 나라 떼제베가 선정되니 말을 바꾸고.

프랑스의 톨레랑스도 자기 나라안에서 자기들끼리만 통하는 거지, 국경선을 넘어 피부색 다르고 사는 모습이 다른 곳에서까지 적용되는 것은 아닌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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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된 건물만 있는 外규장각. 병인양요 때 불탄 것을 복원한 것인데, 원래 있던 자리에는 이미 다른 건물이 들어섰고, 고려 궁궐 터 한쪽에 덩그마니 놓여져 있다. 고려궁궐 터도 원래는 훨씬 더 넓었지만 많이 줄어든 상태에서 담이 둘러쳐져 있다. 왠지 쓸쓸한 마음이 들었는데 지수는 해설사 선생님께 기념품 가게가 있는 지 물어보고 윤수는 계속 딴짓하고.....]

성공회성당과 연무당 옛터

고려궁지로 들어가는 입구에 용흥궁 공원이 있고 그 위쪽으로 성공회 성당이 있다. 지금도 성공회 예배가 드려지는 장소인데, 개항되면서 들어온 성공회에서 겉은 한옥으로 안은 서양식으로 지은 곳이라고. 근데 문이 열려있지는 않았다. 그래서 창문으로 한 컷 사진만 찍고 돌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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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강화도 섬 안쪽으로 들어가서 강화 고인돌까지 보고 돌아나왔다. 예전 고창에서 본 고인돌 무더기를 기대하고 갔는데, 넓은 공원같은 곳에 고인돌 한 개가 중앙에 버티고 있었다. 한쪽으로는 선사시대 움집이라고 만들어 놓은 곳이 있었는데, 노는 토요일에는 무슨 체험 학습 같은 것을 진행한다고 한다.

돌아서 강화대교로 나오는 길가에 연무당 옛터라는 표지가 있었다.

초지진에서 설명 들었던, 운양호 사건 이후 일본의 개항요구에 따라 비평등 조약인 강화도조약을 맺은 장소이다. 원래 연무당은 군사들 훈련하는 훈련소였는데, 지금은 비석으로 표시만 되어 있고, 근처에 길을 낼려고 하는지 공사가 한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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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으로 표시만 되어 있는 연무당 옛터]


강화도를 다녀와서 얻은 소득이라면....지수가 일본 뿐만 아니라 미국과 프랑스도 우리 나라 입장에서는 나쁜 나라였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거. 윤수는 고인돌 봤다는 사실 기억하는 거. 그리고 새총 만들어 쏠 생각으로 돌맹이 주워왔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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